로컬 AI를 시작하기 전에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내 사무실 PC로 뭘 돌릴 수 있나요?" 솔직한 답은 "장비를 봐야 안다"입니다 — 이 모듈을 읽고 나면 어떤 장비를 보든 그 답을 스스로 낼 수 있게 됩니다.
컴퓨터 안에는 계산을 담당하는 두 종류의 부품이 있습니다. CPU는 소수의, 그러나 매우 똑똑한 일꾼입니다. 복잡한 판단을 내리거나 순서대로 처리해야 하는 작업에 강합니다. 반면 GPU는 수천 개의 단순한 일꾼입니다(이 일꾼 하나하나를 '코어'라고 부릅니다). 한 명 한 명은 어려운 일을 못 하지만, 똑같은 계산을 동시에 아주 많이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LLM(거대언어모델)이 추론할 때 실제로 하는 일은 거대한 행렬 곱셈(행렬=숫자를 격자 모양 표로 늘어놓은 것)입니다. 곱하고 더하는 단순한 계산을 어마어마한 양으로 반복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런 성격의 작업에서는 GPU가 압도적으로 유리합니다.
그리고 CPU도 LLM을 돌릴 수는 있습니다. 작은 모델(1B~4B급)이라면 GPU 없이 CPU만으로도 돌아갑니다 — 느리지만, 개념을 익히는 실습에는 충분합니다. 이 지점이 우리에게 중요한데, 아래 04에서 다시 다룹니다.
계산을 하려면 데이터를 올려둘 작업 공간이 필요합니다. CPU에게는 RAM이 그 책상이고, GPU에게는 VRAM이라는 별도의 책상이 있습니다. VRAM은 그래픽카드에 직접 붙어 있는, GPU 전용 메모리입니다.
모델이 제 속도로 돌아가려면 모델 전체가 이 VRAM 위에 올라가 있어야 합니다. 만약 모델 크기가 VRAM 용량보다 크면, 넘치는 부분은 RAM과 CPU 쪽으로 떠넘겨집니다. 이를 오프로딩이라고 부릅니다. 오프로딩은 됩니다. 다만 느립니다 — 속도가 수 배에서 수십 배까지 느려집니다. 즉 "돌아간다"는 것과 "업무에 쓸 만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다소 의외인 사실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델이 토큰(글자 조각) 하나를 만들어낼 때마다, GPU는 모델 전체의 무게(파라미터)를 메모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다시 읽습니다. 글자 하나를 쓸 때마다 모델 통째로 훑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생성 속도의 이론상 한계는 결국 "메모리를 얼마나 빨리 읽을 수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를 식으로 쓰면 대략 이렇습니다.
여기서 얻는 실용적인 시사점은 이렇습니다. 같은 GPU를 쓴다면, 모델 파일이 작을수록 더 빠릅니다. 그래서 모델 크기를 줄이는 기술이 중요한데, 이 방법은 모듈 3(양자화)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위에서 말한 대역폭은 GPU와 자기 메모리(VRAM) 사이의 속도입니다. 그런데 길이 하나 더 있습니다 — GPU와 GPU 사이, GPU와 CPU 사이를 잇는 연결 통로입니다.
이제 실제로 장비 스펙표를 볼 때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핵심은 GPU 이름(세대), VRAM 용량, 메모리 대역폭 이 세 가지입니다. 스펙표에 함께 적힌 쿠다 코어 수(일꾼 수)나 부스트 클럭(일꾼의 손 빠르기) 같은 숫자들은 속도에 관여하지만, "어떤 모델까지 올라가나"는 결국 VRAM이 정합니다. 참고로 지금 GPU에 VRAM이 얼마나 쓰이고 있는지는 nvidia-smi 명령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검은 화면의 명령창인 터미널에 입력하는 전문가용 확인법입니다 — 지금은 몰라도 됩니다. 워밍업 페이지에서 비유와 함께 설명합니다).
| 장비 예시 | VRAM | 감각 |
|---|---|---|
| 사무용 PC (GPU 없음, CPU만) | — | 1B~4B급 Q4를 CPU로 구동 — 느리지만(초당 수 토큰) 개념 실습 가능 |
| 게이밍 노트북 RTX 3070 | 8GB | 4B급 Q4 모델 쾌적 |
| 게이밍 노트북 RTX 4080 | 12GB | 8B급 Q4 쾌적, 14B급 도전 가능 |
| 서버용 구형 GPU 2장(예: 12GB×2) | 합 24GB | 20~30B급 양자화 모델을 나눠서 탑재 가능 |
※ 표의 "Q4"는 모델을 4비트로 압축(양자화)했다는 표기입니다 — 모듈 3에서 자세히 배웁니다. 지금은 "압축해서 가볍게 만든 버전" 정도로 읽으세요.
한 가지 더 유의할 점은, GPU 세대가 너무 낮으면 최신 소프트웨어(예: vLLM 같은 서빙 엔진)가 아예 지원을 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모듈 4(서빙 엔진)에서 다시 다룹니다.
뉴스에서 NPU(Neural Processing Unit)라는 말을 자주 접하셨을 겁니다. 좁게는 스마트폰·노트북에 들어가는 AI 보조 칩을, 넓게는 AI 계산에 특화해 새로 설계된 반도체 전반을 가리키는 말로 쓰입니다.
지금의 AI 인프라 시장은 NVIDIA GPU의 사실상 독주 상태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칩 성능 때문만은 아닙니다. 지난 20년 가까이 쌓인 CUDA라는 소프트웨어 생태계 — 개발 도구, 라이브러리, 그리고 그것에 익숙한 전 세계 개발자들 — 가 진짜 성벽입니다. 칩을 잘 만들어도 소프트웨어가 따라오지 않으면 아무도 쓰지 않으니까요.
이 독주를 깨려는 도전이 곳곳에서 진행 중입니다. 해외에서는 전설적인 칩 설계자 짐 켈러가 이끄는 텐스토렌트(Tenstorrent) 같은 회사가, 국내에서는 리벨리온·퓨리오사AI 같은 K-NPU 기업들이 정부 지원과 함께 추론 시장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왜 하필 추론인지, 각 도전자의 전략과 현재 수준은 어떤지 — 이 지형도는 심화 모듈(모듈 7)에서 제대로 다룹니다.
여기서는 실무 감각 하나만 챙겨두시면 됩니다. 제품 광고의 "NPU 탑재" 문구와 "이 장비에서 LLM이 잘 돈다"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판단 기준은 언제나 내가 쓸 모델과 서빙 소프트웨어가 그 칩에서 실제로 돌아가는가입니다.